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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아파트 브랜드 탄생기 (기초 역사)

5편. ‘단지’ 개념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by happy-tree25 2026. 2. 17.

5편. ‘단지’ 개념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오늘날 우리는 아파트를 말할 때 자연스럽게 ‘아파트 단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초기 아파트는 지금처럼 수백, 수천 세대가 모여 있는 대규모 단지 형태가 아니었다. 1960년대 초창기 아파트는 도심 내 특정 부지에 한두 개 동이 들어서는 개별 건물 형태가 많았다. 이는 공동주택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정부는 주택 공급 방식을 보다 체계화하기 시작했고,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일정 구역을 통째로 개발하는 ‘단지형 개발 방식’을 도입했다. 급격한 도시 인구 증가와 토지 이용 효율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단지 개념의 핵심은 주거 공간과 생활 기반 시설을 함께 계획하는 데 있다. 즉, 아파트 건물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학교, 놀이터, 상가, 공원, 도로를 포함해 하나의 생활권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1970~80년대 대한주택공사 주도의 택지 개발 사업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서울 강남 개발과 같은 대규모 도시 확장 사업은 단지 중심 도시 구조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단지 내부에는 어린이 놀이터와 녹지 공간이 마련되었고, 동 간 거리를 확보해 채광과 통풍을 고려한 배치가 이루어졌다. 이는 단순한 집합 주거가 아니라 ‘계획된 주거 환경’을 지향한 결과였다. 이 시기부터 사람들은 특정 건물이 아닌 ‘단지 이름’으로 거주지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1기 신도시 개발은 단지 개념을 한 단계 더 확장시켰다.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계획도시가 조성되면서 수천 세대 규모의 대단지가 일반화되었다. 이들 신도시는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상업 지구와 업무 지구, 공원과 학교가 체계적으로 배치되었다. 특히 **분당신도시**는 단지형 개발의 상징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이러한 개발 방식은 ‘어느 동네에 사느냐’보다 ‘어느 단지에 사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는 문화를 형성했다. 단지 규모, 브랜드, 조경 수준, 커뮤니티 시설 유무가 주거 만족도와 자산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단지는 단순한 공간적 개념을 넘어 경제적 가치 단위로 자리 잡았다.

 

 결국 단지 개념의 도입은 한국 도시 구조 자체를 변화시켰다. 상업시설과 학군, 교통 인프라가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도시의 생활 패턴도 달라졌다. 아파트 단지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 공동체이자 지역 정체성을 형성하는 단위가 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대도시를 보면 고층 아파트 단지가 도시 경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는 수십 년간 이어진 단지형 개발 방식의 결과다. 초기에는 효율성과 공급 속도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단지는 한국 주거 문화의 기본 틀로 굳어졌다. ‘단지’라는 단어 속에는 한국식 도시화의 과정과 집단 주거 문화의 발전사가 함께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