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를 살펴보면 ‘○○맨션’이라는 이름이 유독 많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이 명칭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주거 문화 변화를 반영하는 흥미로운 흔적이다. ‘맨션(mansion)’이라는 단어는 원래 영어권에서 대저택이나 호화 주택을 의미하지만,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면서 의미가 변형되었다. 일본에서는 공동주택을 지칭하는 용어로 ‘맨션’이 사용되었고, 이 표현이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한국 사회는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근대화의 상징을 찾고 있었으며, 외래어는 곧 세련됨과 발전의 이미지로 연결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파트라는 용어보다 맨션이라는 표현이 더 고급스럽고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1970년대는 본격적인 도시 중산층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제 성장과 함께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계층이 늘어나면서 단독주택보다 관리가 편리하고 도시적 이미지가 강한 공동주택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건설사들은 이러한 소비자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단지 이름에 ‘맨션’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맨션’, ‘△△하이츠맨션’처럼 영어식 표현을 조합해 고급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 양식을 제안하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당시 분양 광고를 보면 ‘근대적 설비 완비’, ‘문화생활의 중심’ 같은 문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맨션이라는 이름과 결합해 도시적 삶에 대한 동경을 자극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브랜드 아파트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맨션’이라는 명칭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대형 건설사들이 고유 브랜드를 개발해 사용하기 시작했고, 단지명에 기업 이미지와 철학을 담으려는 전략이 확산되었다. 대표적으로 **삼성물산**은 래미안이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차별화를 시도했고, 이후 다른 건설사들도 독창적인 브랜드명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맨션’이라는 단어는 과거의 표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시간이 흐르면서 1970~80년대에 지어진 맨션 단지들이 노후화되자, ‘맨션=오래된 아파트’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세련됨의 상징이었던 단어가 오히려 구식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현재 일부 지역에는 여전히 ‘○○맨션’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지들이 남아 있다. 이들 단지는 한국 아파트 초기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름 하나만 보아도 당시 사회가 추구했던 가치와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맨션이라는 표현이 유행했던 배경에는 근대화에 대한 열망, 외래 문화에 대한 동경, 그리고 새로운 중산층의 등장이라는 시대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오늘날의 세련된 브랜드 네이밍과 비교해 보면, 맨션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투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분명 가장 현대적인 선택이었다. 결국 아파트 이름의 변화는 단순한 명칭 변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지나온 경제 성장과 문화적 전환의 과정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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